인사이트 #2 패턴

혁신의 지름길, 일곱 갈래를 제안합니다

발견

우리 지역에 멈추거나 막힌 사업, 노는 땅, 폐교같은 자산이 있다면, 거기가 출발선입니다.

· 2026년 9월 21일

지역혁신은 길고 어려운 길입니다. 합의를 하고, 건물을 짓고, 조직을 세우고, 사람을 모으는 데만 몇 해가 갑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사례DB에 쌓인 성공사례 341건의 '숨은 성공요인'을 모아 읽다 보니, 지름길을 찾아낸 곳들이 있었습니다. 거창군은 세계 유일의 승강기 전문대학을 세우면서 캠퍼스를 짓지 않았습니다. 문을 닫게 된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2008년에 넘겨받아 2010년 3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구례군은 분양이 더뎌 비어 있던 농공단지를 통째로 내놓고, 2011년 6월 단지 전체 면적을 한 번의 협약으로 채웠습니다.

이들이 찾은 것은 새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지역에 이미 있었지만 쓸모없다고, 실패했다고, 너무 흔하다고 치워 둔 것들이었습니다. 그 가치를 다시 보고, 새로 엮어서 출발했습니다. 혁신에도 지름길이 있었던 셈입니다.

카드를 다시 읽으며 그 지름길을 일곱 갈래로 정리했습니다. 우리 지역을 떠올리며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 규제로 막힌 사업

이런 것이 있다면 새 법이 없어서 못 한다고 접어 둔 사업.

다시 볼 관점 새 법을 기다리기 전에, 이미 있는 조항이 그 길을 열어 두지 않았는지 다시 읽습니다.

새로 엮을 방법 막힌 사업과, 다른 법에 이미 열려 있는 조항을 엮습니다.

참고 사례 서천군은 100원 택시가 교통 관련 법과 공직선거법에 막히자, 근거를 지방자치법의 주민 복지증진 사무로 옮겼습니다. 돈을 받는 쪽을 택시가 아니라 주민으로 놓으니 길이 열렸습니다. 농어촌 원격 협진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는 원격진료가 막혀 있자, 농어촌 보건의료 특별조치법이 이미 열어 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진료에 화상 장비를 얹었습니다. 영국 브리스톨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노는 날을 만들면서 새 법을 기다리지 않고, 1847년 법에 근거한 길거리 파티 절차를 그대로 썼습니다.

둘. 멈춘 사업과 팔리지 않던 상품

이런 것이 있다면 중간에 멈춘 공모사업, 이용이 끊긴 제도, 만들었지만 팔리지 않던 특산 상품.

다시 볼 관점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남은 재고로 봅니다. 멈춘 사업에는 이미 모인 명단, 받아 둔 허가, 만들어 둔 상품, 지어 둔 시설이 남아 있습니다.

새로 엮을 방법 남은 것에 다른 운영 주체를 붙이거나, 다른 쓰임을 붙입니다.

참고 사례 일본 오노미치시가 2002년 연 빈집 공가뱅크는 2007년 6월 계약을 끝으로 새로 등록되는 집이 끊겼습니다. 빈집은 그대로 있는데 소개할 물건이 없어 제도가 멈춰 섰습니다. 2009년부터 지역 NPO가 시와 일을 나눠 맡아(시는 등록 심사, NPO는 정보 제공과 상담) 그 제도를 다시 돌렸습니다. 보령은 1996년 내놓은 진흙 화장품이 잘 알려지지 않자 1998년 판촉으로 진흙을 바르는 축제를 열었고, 그 판촉이 지금의 보령머드축제가 됐습니다.

서천은 갯벌을 메우는 산업단지 계획을 접고 그 대신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받았습니다. 메우려던 서천 갯벌은 2021년 '한국의 갯벌'로 세계자연유산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남티롤에서는 농가들이 객실을 내놓고도 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농민조합은 숙소를 새로 짓는 대신, 이미 객실을 갖고 있던 농가 740곳을 1998년 첫 카탈로그로 묶고 스스로 품질 기준을 만들어 직접 검사하며 등급을 매겼습니다. 지금은 1,600여 곳이 그 브랜드를 사용합니다.

셋. 사람의 손끝에 있는 지식

이런 것이 있다면 수십 년 한 가지 일을 해 온 어민, 농민, 장인.

다시 볼 관점 사라져 가는 전통이 아니라, 아직 전수되지 못한 유산으로 봅니다.

새로 엮을 방법 그 판단을 기술(드론, 데이터, 인증)과 엮거나, 흩어진 역량을 한곳에 모읍니다.

참고 사례 신안군은 드론과 인공지능으로 갯벌의 낙지 숨구멍을 찾는데, 알고리즘이 짚은 구멍을 갯벌에서 하나하나 맞춰 보며 정확도를 90% 넘게 끌어올린 것은 수십 년 맨손으로 낙지를 잡아 온 어민들이었습니다. 순창군은 흩어져 있던 고추장 장인들을 한 마을에 모았고, 그 마을이 2004년 전국 1호 특구의 실체가 됐습니다.

넷. 닫혀 있던 땅

이런 것이 있다면 군사시설 보호구역, 반환을 앞둔 부지, 범람원이나 개발이 묶인 땅.

다시 볼 관점 쓸 수 없는 땅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선점하지 않은 땅으로 봅니다. 이권이 얽히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강점일 수 있습니다.

새로 엮을 방법 닫힌 땅과, 그 땅을 좋아할 사람들(서퍼, 작가, 시민)을 엮고, 행정은 문을 여는 일(허가, 기관 협의)을 맡습니다.

참고 사례 양양의 서피비치는 마흔 해 닫혀 있던 군사제한구역이었습니다. 2015년 군이 공유수면 점·사용을 허가하고 군부대 협의를 거들어 문이 열렸습니다. 대구에서는 오랫동안 도심을 가로막던 미군 캠프워커 헬기장 터를 돌려받아, 대구시가 그 자리에 도서관과 잔디광장을 들였습니다.

다섯. 매주 사람이 모이는 곳

이런 것이 있다면 경로당, 마을회관, 지역신문, 오래된 마을회나 장학회.

다시 볼 관점 시설이 아니라 이미 짜여 있는 관계망으로 봅니다. 누가 언제 오는지 아는 곳은 새 서비스를 가장 싸게 실어 나를 수 있는 길입니다.

새로 엮을 방법 이미 모이는 곳에 새 서비스 하나(돌봄, 문화, 디지털 등)를 얹습니다.

참고 사례 옥천에서는 1989년 군민 222명이 주주로 세운 옥천신문이 키운 사단법인이, 청산면 문화공간 청산별곡에서 매주 반찬 310인분을 만들어 31개 마을 경로당에 나릅니다. 신안군은 무료 경로식당과 식사 배달을 맡은 단체에 식재료비와 급식 기자재, 보건증 비용까지 조례로 지원하고, 경로당에는 노인일자리 급식 도우미를 둡니다. 합천군은 관내 경로당 528곳 전부에 공공와이파이를 깔고, 그 위에 마을방송과 영상 연결을 얹었습니다. 부산 영도의 깡깡이예술마을은 마을이 가진 옛 유치원 건물을 고쳐 생활문화센터를 열었고, 1층 마을다방은 60년 넘게 이어 온 대평동마을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여섯. 분양이 안 된 단지, 비어 있는 공장

이런 것이 있다면 분양률이 낮은 농공단지나 산업단지, 가동을 멈춘 공장.

다시 볼 관점 쪼개서 팔아야 할 땅이 아니라, 한 상대에게 통째로 내줄 수 있는 한 덩어리로 봅니다.

새로 엮을 방법 빈 단지 전체와, 옮길 곳을 찾고 있는 한 상대(협동조합, 앵커 기업)를 엮습니다. 이때 지역이 받을 몫(생활 인프라, 일자리)을 협약에 함께 적습니다.

참고 사례 구례군은 용방농공단지를 통째로 한 협동조합에 내놓았고, 그 자리의 자연드림파크는 2016년 511명이 일하는 곳이 됐습니다. 2015년 군 보건의료원이 4년 만에 산부인과를 다시 열 때는 입주한 협동조합 쪽 재단이 장비와 인건비를 댔습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은 필립스가 떠난 공장들을 헐기 전에 시세 절반쯤에 세놓아 세 해 만에 약 6만㎡를 채웠고, 그 임대수입이 개발 사업을 받쳤습니다.

일곱. 문을 닫는 학교와 건물

이런 것이 있다면 폐교, 문 닫는 캠퍼스, 비어 가는 어린이집이나 생활관.

다시 볼 관점 빈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받도록 이미 지어진 곳으로 봅니다. 교실과 강당과 기숙사는 처음부터 여럿이 모이고 배우고 머물라고 만든 공간입니다.

새로 엮을 방법 지역의 대표 품목 하나와 그 품목을 가르칠 기관을 엮으면 전문 교육 거점이 됩니다. 마을 사람들의 모임과 엮으면 마을회관이 되고, 청년 창업과 엮으면 일터가 됩니다.

참고 사례 거창군은 문 닫게 된 캠퍼스를 넘겨받아 승강기 전문대학을 열었고, 고등학교도 새로 짓지 않고 공업고의 이름을 바꿔 승강기고로 돌렸습니다. 광주 청춘발산마을은 문 닫은 구립 어린이집을 마을회관으로 바꿨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시작하는 법

일곱 갈래를 들고 우리 지역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갈래마다 하나씩만 적어도 출발점이 일곱 개 생깁니다.

둘을 골라 엮어 봅니다. 문 닫는 학교와 매주 모이는 사람들, 멈춘 사업과 규제로 막힌 사업, 닫힌 땅과 손끝의 지식. 갈래 하나보다 둘을 엮을 때 새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더 많아집니다.

'이건 쓸모없다고 누가 정했나'를 물어봅니다. 같은 것이 누구 손에 있느냐에 따라 짐이 되기도 하고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사례DB에는 이 일곱 갈래에 해당하는 사례가 더 있습니다. 카드마다 '숨은 성공요인' 칸에 그 사례가 무엇을 다시 보고 무엇과 엮었는지 적어 두었습니다.

꼭 짚어볼 점

한 가지는 함께 적어 둡니다. 미국 애슈빌의 강변 아트지구 이야기입니다.

프렌치브로드 강변의 옛 공장 건물들은 값이 저렴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도심에서 밀려난 작가들이 그 헐값을 보고 모여들었고, 허리케인이 오기 직전에는 창고 스물여섯 동에 작가 300여 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는 10년에 걸쳐 자전거도로와 주차장과 공원을 깔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이 글이 말해 온 지름길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값이 저렴했던 이유는 그곳이 범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2024년 9월 허리케인 헬레네로 강물이 24.67피트까지 올랐고, 지구의 80%를 잃었습니다. 108년 만에 기록이 깨진 수위였습니다. 애슈빌시의회는 이듬해 1월 기준홍수위보다 2피트 높여 짓도록 조례를 고치고, 옛 건물에 주던 예외를 없앴습니다.

버려져 있던 것에는 버려진 이유가 있고, 다시 쓸 때는 그 이유도 함께 물려받습니다. 그래서 지름길을 고를 때 물음 하나를 함께 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버려진 이유는 무엇이고, 그 이유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유가 사라졌거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면 지름길이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못 본 척하면 값을 뒤에 치릅니다.

근거 · 출처

지역혁신데이터랩 사례DB — '숨은 성공요인' 칸을 채운 카드 341건(2026년 9월 기준) 판독

우리 지역엔?

일곱 갈래 가운데 우리 지역에 해당하는 것을 하나씩 적어 보시고, 그중 둘을 엮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막히거나 멈춘 사업, 손끝의 지식, 닫힌 땅, 매주 모이는 곳, 빈 단지, 문 닫는 학교. 처음부터 짓지 않고 출발할 수 있는 길이 거기서 보입니다.

#벤치마킹 #사례DB #유휴자산 #지역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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