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것은 늘 넘치는데, 무엇이 비었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더 할까'는 밤새 고민하지만, '무엇이 비어 있나'는 좀처럼 세어 보지 않는다. 빈칸을 먼저 들여다보면, 다음 한 걸음이 남의 것을 빌려오는 대신 우리 자리를 채우는 일이 된다.
지역의 계획서를 펼치면, 애쓴 흔적이 빼곡합니다. 축제와 청년몰, 워케이션과 스마트팜, 리빙랩까지 — 밤을 새워 짜낸 사업들이 줄지어 있고, 예산표는 반듯합니다. 그 한 장 한 장에는 "우리 지역을 어떻게든 살려 보자"는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두꺼운 계획서 어디에도 좀처럼 없는 페이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비어 있는가." 우리는 더할 것의 목록은 정성껏 만들지만, 비어 있는 것의 목록 — 말하자면 '빈칸의 지도' — 은 손에 쥐어 본 적이 드뭅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의 사각지대
이건 게으름이나 무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함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무언가를 더 붙이는 일에는 다들 익숙하지만, "지금 무엇이, 얼마나 비어 있나"를 같은 무게로 물어볼 언어와 절차를, 우리 중 누구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빈자리가 없을 때, 좋은 마음은 종종 몇 갈래 길로 흘러갑니다. 하나는 옆을 보는 일입니다. 우리 빈칸을 모르니, 옆 동네가 한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지금 한창인 유행을 형태만 옮겨 옵니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댈 지도가 없으니 남의 답을 빌리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겹치는 일입니다. 누가 무엇을 맡을지 함께 그려 본 적이 없으니, 이웃과 같은 사업을 나란히 벌이고 부처마다 따로 얹힙니다. 마지막은 그대로 남는 일입니다. 정작 오래 비어 있던 자리는, 아무도 그것을 '비어 있다'고 이름 붙여 주지 않아 조용히 그대로 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스러운 전제를 하나 두고 싶습니다. 비어 있다고 다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빈자리는 그 지역에 필요한 밑바탕이 아직 없어서 비어 있는, 정당한 여백입니다. 그런 여백까지 억지로 메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음이 쓰이는 건, '있어야 할 자리가 오래 비어 있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빌려온 답이 끝내 남기는 것
이런 흐름은 어느 한 곳의 일이 아닙니다. 안팎의 사례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낯설지 않게 되풀이됩니다.
한때 전국이 '청년몰'을 지었습니다. 임차료를 깎아 주고, 청년 상인을 부르고, 공동 카페를 들이던 — 어디서나 닮은 모습이었지요. 지원이 이어지는 동안은 불이 켜졌지만, 지원이 걷히자 원래의 빈 점포가 슬며시 되돌아왔습니다. 한 신문은 나랏돈을 들인 청년몰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고 전합니다(한국일보, 2024). 누가 못나서가 아닙니다. '우리 골목에는 무엇이 비어 있나'를 먼저 묻지 않고, 잘돼 보이는 형태만 옮겨 왔기 때문입니다.
바다 건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페인의 작은 공업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도시를 되살린 사연으로 유명합니다. 많은 도시가 그 미술관을 따라 지었습니다. 그러나 되살아난 곳은 드물었습니다. 빌바오를 일으킨 건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아래 삼십 년을 이어 온 계획과 손발을 맞춘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보이지 않는 살림'이었으니까요. 겉모습은 옮겨 와도, 그 살림까지 옮겨 오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채우는 일은, 대개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빈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를 붙들고 싶습니다.
먼저, 빈틈을 어림이 아니라 눈금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가 이 지역에 정말 필요한데도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 빈틈은 더 깊습니다. 이렇게 '무엇이 얼마나 비었나'를 한 자로 재어 보면, 지역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할 자리가 떠오릅니다. 저희는 이렇게 빈칸을 헤아리는 눈을 '빈틈진단법'이라 부릅니다.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빈칸을 세면 '더 할 것'만이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함께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빈틈을 들여다보는 일은 계획서를 더 두껍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홀가분하게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채운다는 것이 꼭 '새로 짓는 일'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가진 것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다리' 하나가, 새 건물 열 채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전남 신안의 '햇빛연금'이 그렇습니다. 볕과 바람으로 번 돈이 바깥으로 흘러가고 주민에게는 바뀐 풍경만 남던 자리에, 그 이익을 주민에게 나누는 조례 하나를 놓았습니다. 확인된 것만 보아도 한 사람에게 한 해 수백만 원, 쌓여서 백억 원을 넘겼고 주민 만 명에게 가 닿았습니다(경향신문·한국일보 등). 없던 자산을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던 볕을 '살림'으로 건네는 다리를 놓은 것이지요. 빈틈은 가진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가진 것을 사람과 살림으로 건네줄 다리가 아직 없다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엔 무엇이 비어 있을까
거창한 결론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오늘 하나만 가만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지역의 사업 목록 말고 — 우리 지역의 '빈칸 목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한 장이 없다면, 다음 걸음은 또 옆을 보거나 유행을 따르거나 이웃과 겹칠지 모릅니다. 빈칸을 세는 일은 새 예산을 달라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시선을 '무엇을 더할까'에서 '무엇이 비어 있나'로, 잠시 돌려 보는 일입니다.
청년몰 유행 복제: 한국일보(2024) 청년몰 상당수 폐업 보도
빌바오 구겐하임·모방 복제 실패: Guggenheim Bilbao Economic Impact Study(2011·2017)
신안 햇빛연금: 경향신문·한국일보 등 (연 최대 수백만·누적 100억·주민 1만, 확인된 수치)
방법론 관점(빈칸=필요한데 미충족·정당한 여백은 제외): 지역혁신데이터랩 혁신모델 빈틈진단법
여섯 자리(경험·체류 / 관계·인구 / 정주여건 / 필수 생활서비스 / 산업·일자리 / 토대·거버넌스) 가운데 우리의 빈칸은 어디쯤일까요. '89혁신 진단결과'의 빈틈 뷰 지도에서 우리 지역을 짚어, 무엇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견주어 보는 잣대이자, 함께 채워 갈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