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동향 변천사 - 청송군
큰 흐름
1995~2005 · 자치가 열리고, 사과와 주왕산이 이름을 얻다
주민이 군수를 직접 뽑기 시작한 1995년이 이 기록의 출발점입니다. 청송은 이미 두 가지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1924년 현서면에서 시작해 70년을 이어 온 사과, 그리고 1976년 국립공원이 된 주왕산입니다. 1994년 청송사과가 상표를 등록하며 이름을 갖췄고, 2003년에는 주산지에서 찍은 영화 한 편이 개봉하며 280년 가까이 된 저수지가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같은 무렵 진보제일고등학교가 진보고등학교로 흡수 통합되며 문을 닫았습니다. 갖고 있는 것을 알리는 일과 학교를 합쳐야 하는 일이 같은 십 년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2015~2018 · 유네스코 등재와 풍력 갈등이 나란히 왔다
청송군은 자연유산을 관광으로 잇는 길을 밀었습니다. 2014년 국가지질공원 인증에 이어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고, 아이들이 체험하는 관광시설과 귀농 유치 공모도 함께 챙겼습니다. 그런데 같은 산에 풍력발전단지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2016년부터 주민 항의가 시작됐습니다. 지질공원으로 지킬 산과 발전기를 세울 산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2018년에는 인허가와 얽힌 금품수수로 군의원이 구속되면서, 다툼은 사업의 옳고 그름을 넘어 절차를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옮겨 갔습니다.
2019~2022 · 정치가 흔들리는 사이 청정 브랜드로 방향을 잡다
풍력 갈등은 국회 앞 시위까지 이어졌고, 2020년에는 비위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전임 군수가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군정을 향한 신뢰가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오른 시기입니다. 그 사이 청송군은 다른 쪽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2021년 맑은 공기를 앞세운 '백두대간 산소산업'을 내걸며, 지켜 온 자연을 관광 자원에서 산업 재료로 옮겨 쓰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멈췄던 사과축제가 3년 만에 다시 열려, 이후 해마다 규모를 키우는 발판이 됐습니다.
2023~2024 · 사과와 항노화, 자산을 산업으로 옮겨 적는 시도
청송군은 갖고 있는 것을 산업 언어로 바꾸는 일에 힘을 실었습니다. 항노화 U시티를 내걸고 대학·기업과 협약을 맺었고, 2500억원 규모 스마트팜 민자 유치를 추진했으며, 146억원을 들인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를 준공해 사과 재배 방법을 정리하는 거점을 세웠습니다. 지질공원은 첫 재인증을 통과했습니다. 같은 해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과 저출생 실행계획도 함께 짰습니다. 다만 풍력 용량증설을 둘러싼 천막농성은 이때도 이어졌고, 2024년 7월에는 양수발전소 공사구역 안 석곽묘가 협의 없이 훼손된 사실이 뒤늦게 보도돼 개발과 문화유산 관리를 어떻게 맞물릴지가 물음으로 남았습니다.
2025~2026 · 산불을 겪고, 축제와 기본소득으로 사람을 되돌리다
2025년 3월 큰 산불이 청송까지 번져 주민 2000여명이 대피 준비에 들어갔고, 주왕산 일대 관광지와 고택이 탔습니다. 청송군은 원포인트 추경으로 급한 복구를 하고, 국토교통부 특별재생지역 지정과 농촌협약으로 재원을 붙였습니다. 그해 가을 사과축제에 현장 50만명이 찾아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이듬해 문화관광축제로 6년 만에 다시 지정됐습니다. 2026년에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에 뽑혀 18개월간 657억원을 쓰기로 했고, 지급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전입 인구가 1000명 넘게 늘었습니다. 사람을 붙잡는 방법이 공모 유치에서 직접 지급으로 옮겨 간 국면입니다.
굵은 줄기
사과 한 품목이 산업이 되기까지 — 1924년 묘목 보급으로 시작해 1994년 상표를 등록했고, 2022년 축제를 되살려 2025년 현장 50만명까지 키웠습니다. 2024년 황금사과 연구단지로 재배 방법을 정리하고, 2025년 풋사과소금 기술이전으로 가공을 넓혔으며, 2025~26년 스마트과수원·재해대응형 하우스로 기후위기에 대비했습니다. 2025년 미국산 사과 수입 검토에 군의회가 성명을 낸 일도 같은 줄기입니다. 한 품목을 두고 재배·가공·축제·연구·통상 대응이 한 줄로 이어집니다.
자연유산을 관광으로 잇는 길 — 1721년 준공한 주산지, 1976년 주왕산 국립공원, 2003년 영화 한 편, 2014년 국가지질공원,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2023년 첫 재인증으로 이어집니다. 2025년 산불이 그 관광지 일부를 태웠고, 2026년 청송군은 스포츠대회 유치로 사람을 다시 부르려 했습니다.
같은 산을 두고 갈린 8년 — 2016년 면봉산 항의 방문에서 시작해 2017년 노래산 집회, 2018년 인허가 취소 요구와 금품수수 사건, 2019년 국회 앞 시위, 2020년 민원, 2023년 용량증설 반대 천막농성까지 이어졌습니다. 2023년 9월 청송군과 군의회가 입장을 밝혔지만 찬반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자연유산이 같은 능선에서 만났을 때 무엇을 먼저 정해야 하는지, 청송이 오래 겪어 온 물음입니다.
청정 환경을 산업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 — 2021년 산소산업, 2023년 항노화 U시티와 대학·기업 협약, 2025년 AI 역노화연구원으로 이어집니다. 맑은 공기라는 자산을 관광 홍보 문구가 아니라 사업 품목으로 바꿔 보려는 시도가 다섯 해에 걸쳐 쌓였습니다.
사람을 붙잡는 방법의 변화 — 2015년 귀농인 유치 공모, 2024년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과 저출생 실행계획, 2025년 346억원 농촌협약, 2025년 10월 군의회 건의안, 2026년 6월 농어촌기본소득 선정, 7월 지급 개시와 전입 1000명 증가로 이어집니다. 공모로 사업을 따오던 방식에서 주민에게 직접 주는 방식으로 무게가 옮겨 갔습니다.
군정의 신뢰가 시험대에 오른 순간들 — 2018년 군의원 구속, 2020년 전임 군수 사망, 2024년 석곽묘 훼손 협의 누락 보도, 2025년 산불 진화 과정의 공무원 차출 논란, 2026년 경선 공방이 이 줄기에 놓입니다. 대형 사업의 인허가와 재난 대응처럼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 하는 국면에서 절차를 어떻게 남기느냐가 거듭 물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청송이 겪으며 쌓아 온 학습 이력으로 읽는 편이 맞겠습니다.
가르치는 곳이 늘었다가 줄어드는 곡선 — 1910년 진보면 사립 광덕학교와 1912년 청송공립보통학교로 초등교육이 시작됐고, 1948년부터 중학교가, 1953년부터 고등학교가 면마다 늘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확장이 멈춘 뒤 2005년 진보제일고등학교가 진보고등학교로 흡수 통합되며 문을 닫았습니다. 2026년 장애인복지센터 건립처럼 생활 기반을 새로 놓는 사업이 이어지지만, 학교가 늘던 곡선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1995년
- 1995.6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져 주민이 초대 민선 청송군수를 직접 뽑았다. 청송에서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2003년
- 2003 주왕산면 저수지 주산지에서 찍은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개봉했다. 1721년에 준공한 농업용 저수지가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2005년
- 2005.3 진보제일고등학교가 진보고등학교에 흡수 통합되며 문을 닫았다. 통폐합 인가는 앞선 2004년 9월에 났다. 1950~80년대에 줄줄이 늘어났던 지역 학교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 위키백과
2015년
- 2015.9 청송군이 추진한 '장난끼공화국' 조성사업이 경북도의회 의결을 통과했다. 아이들이 놀며 체험하는 관광시설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 청송 ‘장난끼공화국 조성사업’ 추진 본격화
- 2015.11 청송군이 도시민농촌유치지원사업과 귀농인유치지원사업 공모에 잇달아 뽑혔다. 국비 공모로 정착 인구를 늘려 보려던 무렵이다. — 청송군, '도시민농촌유치지원사업' 최종 선정
2016년
- 2016.12 면봉산 풍력발전단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청송군을 찾아 항의했다. 여러 해 이어질 풍력 갈등의 첫 국면이다. — 면봉산 풍력발전단지 반대주민 '항의 방문'
2017년
- 2017.6 청송군이 세계지질공원센터 유치와 슬로시티를 함께 내걸었다. 2014년 국가지질공원 인증에 이어 유네스코 등재를 겨냥한 걸음이었다. — (한동수 청송군수 인터뷰) 세계지질공원센터 유치에 온힘
- 2017.9 노래산 풍력발전단지를 두고 주민들이 집회를 열었다. 지질공원으로 알려진 자연유산이 훼손된다는 것이 반대의 핵심 논리였다. — 청송 '노래산' 풍력발전 주민 반발
2018년
- 2018.2 풍력발전 사업자에게 2억원을 받은 혐의로 청송군의원이 구속됐다. 인허가를 둘러싼 갈등 위에 비리 정황이 겹치면서 사업을 향한 신뢰가 흔들렸다. — 풍력발전 사업자에게 2억원 뇌물 받은 청송군의원 구속
- 2018.6 6·13 지방선거에서 윤경희 후보가 청송군수로 당선됐다. 이후 민선7·8기를 이어 맡는다. — (2018 지방선거 당선인 결의대회) 참석자 명단
- 2018.7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뒤 첫 한 해가 지나며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지역 언론이 전했다. 등재는 2017년이었다. —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1년…관광객 급증
- 2018.9 환경 훼손 우려에 인허가 절차 의혹까지 겹치자 주민들이 면봉산 풍력단지 인허가 취소와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청송 면봉산 풍력단지 조성 취소 촉구
2019년
- 2019.5 윤경희 군수가 취임 1년을 맞아 '변화하는 청송'을 군정 방향으로 내걸었다. — 윤경희 청송군수 취임 1년...'변화하는 청송'
- 2019.8 보수공사가 진행되던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별채 한 동이 무너졌다. 오래된 가옥을 어떻게 지킬지가 함께 물음으로 남았다. — '별채 붕괴' 청송 평산신씨 종택 사대부 전통 오롯이 간직
- 2019.10 면봉산 풍력저지위가 국회 앞에서 시위를 열고 인허가 재검토를 촉구했다. 지역에서 시작된 갈등이 중앙 무대까지 올라갔다. — '비리'로 얼룩진 청송 면봉산 풍력발전사업 인허가 취소 요구 확산
2020년
- 2020.2 비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한동수 전 청송군수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역 정치에 큰 충격을 남겼다. — 검찰, 전임 청송군수 자택 등 압수수색
- 2020.3 면봉산 풍력저지대책위가 공사 중단과 인허가 취소, 의혹 규명을 요구하며 민원을 냈다. 첫 항의로부터 3년이 넘었다. — 청송 면봉산풍력발전 건설중단-인허가 취소-의혹 진실규명 촉구
2021년
- 2021.4 청송군이 맑은 공기를 앞세운 '백두대간 산소산업'을 본격 추진했다. 뒤에 '산소카페 청송' 브랜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 청송군, 백두대간 산소산업 본격 추진
2022년
- 2022.1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송군수 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 이경기 전 청도부군수, 청송군수 출마선언…40년 검증된 행정전문가
- 2022.6 6·1 지방선거에서 윤경희 군수가 재선해 민선8기를 맡았다. — 윤경희 청송군수 당선인 지난 4년 밑거름 삼아 희망농업 구현
- 2022.11 코로나19로 멈췄던 청송사과축제가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이때부터 해마다 규모를 키워 간다. — (기획) 3년 만에 열리는 '제16회 청송 사과축제' 9~13일 개최
2023년
- 2023.6 청송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을 받았다. 첫 등재 이후 6년 만에 치른 첫 재평가였다. —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받아
- 2023.7 면봉산 풍력단지 용량증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2016년 첫 항의로부터 일곱 해째였다. — 청송 면봉산풍력 용량증설 반대 천막농성 5일째
- 2023.7 청송군이 항노화 산업을 키우려고 대학·기업과 협약을 맺고 캠퍼스 유치에 나섰다. 맑은 환경을 산업의 재료로 쓰겠다는 구상이었다. — 산소청정지역 경북 '청송'에 대학과 기업이 들어간다
- 2023.9 청송군과 군의회가 풍력발전 인허가를 두고 입장을 밝혔지만 주민 찬반은 좁혀지지 않았다. — 청송군·의회, 풍력발전사업 인허가에 대한 입장 밝혔으나 갈등 지속
2024년
- 2024.2 청송군이 스마트농업 복합문화단지를 만들겠다며 2500억원 규모의 민간자본 유치 협약을 맺었다. — 청송군, 스마트팜 복합문화단지 조성 추진…2025년 완공
- 2024.4 청송군이 저출생 대응을 군정 핵심 과제로 놓고 과제별 실행계획 보고회를 열었다. — 청송군, 저출생과의 전쟁 과제별 실행계획 수립 보고회 성료
- 2024.4 청송군이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 수립 용역 중간보고회를 열고 인구 대응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청송군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 수립 나서
- 2024.7 청송양수발전소가 2021년 파천면 신흥리 석곽묘를 청송군 문화유산팀과 협의하지 않고 훼손한 뒤 데크와 쉼터를 놓은 사실이 보도돼 논란이 됐다. 이 석곽묘는 2004년 발굴해 옮겨 보존하던 유적이다. — (단독) 청송양수발전소, 삼국시대 신라 석곽묘 고분 유적 훼손 논란
- 2024.11 146억원을 들인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가 준공됐다. 다축형 초밀식 재배 같은 표준재배 방법을 정리하는 사과산업 거점으로 삼았다. — 청송군, 황금사과 연구단지 준공식 개최…표준재배 매뉴얼 개발
2025년
- 2025.3 산불 진화 과정에서 청송군수가 공무원을 차출해 모친 주택을 먼저 진화하게 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 청송군수, 공무원 차출 '모친 주택 우선 진화' 논란
- 2025.3 불길이 주왕산 일대 관광지와 사남고택을 지나며 태웠다. 나들이철을 앞둔 관광업계가 크게 흔들렸다. — '산불 직격' 청송군 주요관광지도 소실…나들이철 앞두고 탄식
- 2025.3 발생지는 의성이었던 대형 산불이 안동을 거쳐 청송까지 번졌다. 주왕산국립공원 가까이 불길이 닿아 주민 2000여명이 대피 준비에 들어갔다. — 의성산불 안동 거쳐 청송까지 위협...청송주민 2000여명 대피 준비
- 2025.4 청송군이 산불 피해를 서둘러 복구하려고 원포인트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농·축산·양봉 피해 농가에는 농기계 구입비를 지원했다. — 청송군, 산불피해 신속 복구 위 '긴급 추경' 5,341억 편성해
- 2025.5 청송군이 농림축산식품부와 5년간 346억원 규모의 농촌협약을 맺어 정주여건 개선 사업을 하기로 했다. — 청송군, 농림축산식품부와 346억 규모 농촌협약 체결
- 2025.6 국토교통부가 산불 피해를 입은 청송군과 영덕군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역당 4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 국토부, '산불 피해' 경북 영덕·청송군 '특별재생지역' 지정
- 2025.6 청송군이 덜 익은 사과로 만드는 '풋사과소금' 기술을 이전받는 협약을 맺었다. 사과를 파는 데서 가공하는 쪽으로 폭을 넓혀 본 시도다. — 청송군, 풋사과소금 기술이전 협약 체결
- 2025.7 청송군이 현서면 화목1·2리 일대 과실전문생산단지 기반조성 공모에 뽑혀 국비 28억원을 확보했다. 산불 뒤 과수 기반을 다시 세우는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 청송군 화목1·2리, 과실전문생산단지 기반조성 공모 선정
- 2025.7 청송군의회가 정부의 미국산 사과 수입 검토에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 성명을 냈다. 청송 주력 작목인 사과농가의 이해가 직결된 사안이었다. — 청송군의회, 정부의 미국산 사과 수입 추진 즉각 중단 촉구 성명서 발표
- 2025.9 청송군이 사과를 원료로 삼는 'AI 역노화연구원' 현판식을 열고 사과칩·사과주스를 선보였다. 산소·항노화 전략을 사과산업에 붙인 사업이다. — '청송 AI 역노화연구원' 현판식 개최...사과칩·사과주스 공개
- 2025.10 청송군의회가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유치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하고 국비 지원 비율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 청송군의회,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촉구 건의안 채택
- 2025.11 산불 피해를 입은 관1리에 마을회관이 준공돼 주민이 다시 모이는 곳이 생겼다. — 청송 관1리 마을회관 준공…산불 피해 마을의 공동체 재생 거점 마련
- 2025.11 제19회 청송사과축제에 현장 50만명, 온라인 320만명이 찾았다. 봄 산불로 가라앉았던 지역경제가 돌아서는 계기로 꼽혔다. — 청송사과축제, 50만 방문·320만 온라인 참여…대기록 작성
- 2025.12 청송군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스마트과수원 특화단지 공모에 뽑혀 국비 30억원을 확보했다. — (청송 24시) 청송군, 스마트과수원 특화단지 공모 선정...사업비 30억 확보
- 2025.12 청송군이 사과축제 평가보고회를 열고 직접 경제효과 471억원을 확인했다. 산불을 겪은 지역경제의 회복을 이끈 사업으로 자체 평가했다. — 청송사과축제, 직접 경제효과 471억원 창출
2026년
- 2026.1 청송군이 장애인복지센터 건립을 본격화했다. 2026년 착공,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잡았다. — 청송군, 장애인복지 서비스 강화…2028년 장애인복지센터 준공 목표
- 2026.1 청송사과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 2026~2027년 문화관광축제로 다시 지정됐다. 2019년 이후 6년 만의 복귀다. — 청송사과축제, '문화관광축제' 2연속 재선정…정부 인증으로 '대표성' 다졌다
- 2026.2 청송군이 재해대응형 하우스를 갖춘 스마트 사과재배 시범지 20곳을 골랐다. 70억원을 들여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사업이다. — 기후 위기 속 경북 청송 사과 지킨다…재해대응형 하우스 구축
- 2026.4 6·3 지방선거를 앞둔 4월 7일, 청송군수 경선 후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청송읍 덕리지구 농촌공간정비사업의 토지보상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오간 의혹의 사실관계는 기사 시점 기준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 청송군수 경선, 농촌공간정비사업 토지보상 의혹 공방
- 2026.6 청송군이 산불 뒤 지역경제를 되살리려 전국 규모 스포츠대회 유치에 나섰다.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국비 확보와 고교축구리그 유치가 이어졌다. — 산불 상처 딛는 청송…전국 스포츠대회 유치로 지역경제 다시 뛴다
- 2026.6 청송군이 농림축산식품부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에 뽑혔다. 18개월간 657억원을 들여 주민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는 사업이다. — 경북 청송군 18개월간 657억 투입...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 2026.7 청송군이 농어촌기본소득 신청을 받아 1인당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시행 한 달여 만에 전입 인구가 1000명 넘게 늘었다. — 청송군 농어촌 기본소득 1인당 월 20만 원…1개월만에 인구 1천15명 증가
참고 · 이 지역의 뿌리
아래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이전의 기록입니다. 이 지역이 어떤 자산을 왜 갖게 됐는지 짚어 두는 배경이며, 진단이 보는 동향의 본체는 위쪽입니다.
아래는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되기 전, 1994년 이전의 기록입니다. 오늘의 청송을 이루는 바탕이라 남겨 두되 본체 뒤에 둡니다. - 757 신라 경덕왕 16년, 이 지역의 이름이 적선(積善)으로 바뀌고 야성군에 딸린 현이 됐다. — 위키백과 - 1418 소헌왕후 심씨의 본향이라는 이유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됐다. 세종이 즉위한 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1423 세종 5년, 청보군에서 청송군(靑松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의 지명이 이때 자리 잡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1459 세조 5년, 청송군이 청송도호부로 다시 오르고 안덕현을 합쳐 9개 면 57개 리가 됐다. — 위키백과 - 1721 부동면(현 주왕산면)에 농업용 저수지 주산지가 준공됐다. 1720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10월에 마쳤다. 왕버들 군락과 어우러진 경관이 뒷날 관광자원이 된다. — 위키백과 - 1895.6 갑오개혁 23부제로 청송군이 안동부 관할이 됐다.
— 위키백과 - 1896.8 13도제로 청송군이 경상북도 관할이 됐다. — 위키백과 - 1912.4 청송 지역 첫 근대식 공립 초등교육기관인 청송공립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앞서 1909년에 문을 연 사립 낙일학교가 그 전신이다. — 위키백과 - 1912.5 진보면 사립 광덕학교가 진보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됐다. 학교 자체는 1910년 9월에 이미 문을 연 터였다. — 위키백과 - 1914 부군면 통폐합으로 옛 진보군 대부분이 청송군에 합쳐지고 8개 면 체제가 됐다.
— 위키백과 - 1921.4 현서면 화목 지역에 화목공립보통학교가 4년제로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24 박치환 장로가 현서면 덕계리에 사과 묘목을 보급하면서 사과 재배가 청송 전역으로 퍼졌다. 오늘의 청송사과가 여기서 출발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1930.7 부남면에 부남공립보통학교 설립이 인가됐다. 문을 연 것은 같은 해 9월 1일이다. — 위키백과 - 1935.4 안덕면에 안덕공립보통학교가 인가와 함께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35.10 파천면에 파천공립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뒷날 1990년대에 인근 분교와 송강초등학교를 받아 안는다. — 위키백과 - ⚠️ 1945 해방 직후 미군정 미곡 정책과 경북 일대를 덮친 기근으로 주민이 굶어 숨졌다는 서술이 전해진다.
다만 관보·군지·연구서 같은 원문 근거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고 청송만의 규모도 확인되지 않아, 근거를 찾은 뒤 다시 적는다. — 근거 미확보(인용하던 위키백과 청송군 문서에서 해당 서술이 확인되지 않음) - 1947.3 현동면에 현동고등공민학교 설립이 인가됐다. 이 학교가 현동중학교로 인가받는 것은 1974년 12월이다. — 위키백과 - 1947.6 부동면 이전리에 이전국민학교가 문을 열었다. 설립 인가는 그해 4월이었다.
— 위키백과 - 1948.9 청송읍에 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48.12 안덕면에 안덕공립공업초급중학교가 두 학급 152명으로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53.6 진보면에 진보농업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설립 인가는 그해 4월이었고, 교명이 진보고등학교로 바뀐 것은 2005년이다. — 위키백과 - 1954.6 청송읍에 고등학교가 문을 열고 청송중학교가 함께 놓였다. — 위키백과 - 1963.11 진보면에 중학교가 하나 더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1.3 부남면 구천 지역에 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2.3 현서면에 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3.7 행정구역을 조정해 현서면의 복동·덕성동·성재동을 안덕면에 붙였다. — 위키백과 - 1974.3 청송군에 특수 분야 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4.5 청송읍에 여자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6.3 주왕산 일대가 열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공원 구역의 소재는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친다. 청송을 대표하는 자연 관광자원이 여기서 시작된다. — 위키백과 - 1978.3 청송읍에 여자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79.5 청송면이 청송읍으로 승격됐다. — 위키백과 - 1981.12 청송군에 보호감호소가 문을 열었다. 사회보호법에 따른 시설로 운영되다 1983년 청송교도소로 이름이 바뀐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1982.5 현서면에 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 위키백과 - 1983 대통령령 개정으로 청송의 보호감호소가 청송교도소로 이름을 바꿨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1983.2 행정구역을 조정해 영양군 입암면 흥구동·방전동 각 일부가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됐다. — 위키백과 - 1993.12 청송군청 청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 위키백과 - 1994.12 청송사과가 지역 특산물 브랜드로 상표등록됐다. 1924년 시작된 재배가 이름을 갖게 된 해다. — 위키백과
부록 1. 사실 적대검증
- [✅ 확인] 1983.2 영양군 입암면 일부 지역을 진보면에 편입
- 교정: 없음(흥구동·방전동 각 일부라는 범위를 본문에 밝혔다)
- 소견: 위키백과 청송군 연혁에 원문이 그대로 있다. 편입받은 쪽이 청송군이고 이관한 쪽이 영양군이라는 범위 한정 서술이라 실명을 그대로 둔다.
- [✅ 확인] 757 적선현으로 개칭, 야성군 영현 편입
- 교정: 없음(괄호 안 현재 지명 표기만 덜어냈다)
- 소견: 위키백과와 향토문화전자대전이 함께 뒷받침한다. 야성군은 상급 행정단위일 뿐 사건 주체가 아니라 오귀속이 아니다.
- [🟡 부분오류] 2024.6 청송양수발전소 공사 중 신라 석곽묘 유적 훼손 논란
- 교정: 2024.7로 옮기고, 훼손 시점(2021년)·소재(파천면 신흥리)·협의 누락·데크 조성 사실을 본문에 적었다.
- 소견: 주체와 소재지는 정확했으나 연월이 틀렸다. 단독 보도일이 2024년 7월 22일이고 2024년 6월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 [✅ 확인] 2026.4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송군수 경선 후보들 사이 토지보상 의혹 공방
- 교정: 기자회견 날짜(4월 7일)와 사업명(청송읍 덕리지구 농촌공간정비사업)을 넣고, 미확정 상태를 과거 시점 서술로 고정했다. 개인 실명은 본문과 링크 문구에서 뺐다.
- 소견: 경북일보 2026년 4월 8일 기사에 회견 날짜와 사업명이 그대로 있다. 다만 6·3 선거는 이미 치러졌고 의혹의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아 현재 진행형으로 읽히지 않게 적었다.
- [🟡 부분오류] 1721 부동면(현 주왕산면)에 주산지 축조
- 교정: 규모 수치(길이 100m·너비 50m·수심 8m)를 뺐고, 1720년 8월 착공·이듬해 준공으로 적었다. 출처도 위키백과 주산지 문서로 바꿨다.
- 소견: 준공 연도는 맞지만 규모 수치가 인용 출처와도 위키백과와도 어긋나 어느 쪽도 근거가 없었다. 착공 연도를 왕대와 잘못 묶은 표기도 함께 걷어냈다.
- [✅ 확인] 1418 세종 1년, 청보군으로 승격
- 교정: 왕대 라벨 '세종 1년'을 '세종이 즉위한 해'로 바꿨다.
- 소견: 연도와 승격 사실은 두 출처가 함께 뒷받침한다. 즉위년칭원법에 따라 1418년은 세종 즉위년이고 출처마다 왕대 표기가 갈려, 라벨을 즉위년으로 적는 편이 안전하다.
- [✅ 확인] 1914 부군면 통폐합으로 옛 진보군 대부분이 청송군에 합쳐짐
- 교정: 없음
- 소견: 위키백과에 '진보군 일원(동면·북면 제외) 편입' 원문이 있고, 편입 뒤 8개 면 체제도 본문 서술과 맞는다.
- [⬜ 미확인] 1945 해방 직후 미군정 미곡정책·경북 일대 기근으로 주민 다수 아사
- 교정: ⚠️를 붙이고, 원문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을 문면에 밝혔다. 확인되지 않은 인용 출처는 뺐다.
- 소견: 인용하던 위키백과 문서에 이 서술이 통째로 없었다. 같은 문장이 실린 곳은 1·2차 출처가 붙지 않은 백과 항목 한 줄뿐이라 청송 고유의 규모를 세울 근거가 없다. 관보·군지·연구서를 찾은 뒤 다시 적는다.
- [✅ 확인] 1976.3 주왕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
- 교정: 열두 번째 국립공원이라는 사실과 '소재는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친다'는 범위 한정을 넣었다.
- 소견: 1976년 3월 30일 지정으로 두 문서가 일치한다. 공원 구역이 두 군에 걸치므로 범위를 한정해 적어야 청송 단독 몫으로 읽히지 않는다.
- [✅ 확인] 2005.3 진보제일고등학교 폐교
- 교정: 단순 폐교가 아니라 진보고등학교로의 흡수 통합임을 밝히고, 2004년 9월 인가 사실을 덧붙였다.
- 소견: 2005년 3월 1일 폐교가 맞고 진보고등학교 연혁이 통폐합 경위를 교차 확인해 준다.
- [✅ 확인] 1912.4 청송 지역 첫 근대식 공립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학교명(청송공립보통학교)과 전신인 사립 낙일학교(1909)를 밝혔다.
- 소견: 1912년 4월 1일 개교가 학교 문서로 확인된다. '공립'이라는 한정어가 빠지면 틀린 문장이 되므로 그대로 지켰다.
- [🟡 부분오류] 1912.5 진보면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개교가 아니라 사립 광덕학교(1910년 9월 개교)의 진보공립보통학교 개편으로 고쳤다.
- 소견: 1912년 5월 24일은 개편일이다. 개교로 적으면 진보면에 학교가 선 시점이 두 해 늦게 읽힌다.
- [✅ 확인] 1921.4 현서면 화목 지역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학교명과 4년제라는 점을 밝혔다.
- 소견: 1921년 4월 1일 화목공립보통학교 개교가 맞고 소재도 현서면 구산리다. 수집 요약에 있던 '파천면' 표기는 오류라 반영하지 않았다.
- [🟡 부분오류] 1930.7 부남면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7월 4일은 설립 인가일이고 개교는 같은 해 9월 1일임을 밝혔다.
- 소견: 인가와 개교를 뒤섞은 서술이었다. 소재가 청송군 부남면인 점은 맞아 동명 학교와 혼동한 흔적은 없다.
- [✅ 확인] 1935.4 안덕면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학교명을 밝히고 인가와 개교가 같은 날임을 적었다.
- 소견: 학교 문서에 1935년 4월 1일 설립 인가 및 개교로 되어 있고 소재도 안덕면이다.
- [✅ 확인] 1935.10 파천면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학교명과 1990년대 통폐합 이력을 덧붙였다.
- 소견: 1935년 10월 1일 개교, 소재 파천면 관리로 학교 문서와 일치한다. 학교 통폐합 줄기로도 이어 읽을 수 있다.
- [🟡 부분오류] 1947.3 현동면에 중학교 개교
- 교정: 현동고등공민학교 설립 인가로 고치고, 현동중학교 인가는 1974년 12월임을 밝혔다.
- 소견: 기관 종류가 틀린 서술이라 청송의 중등교육 확충 시점을 27년 앞당겨 읽히게 했다. 굵은 줄기의 학교 서사도 함께 고쳤다.
- [✅ 확인] 1947.6 부동면 이전리에 초등교육기관 개교
- 교정: 4월 인가·6월 개교로 나눠 적었다.
- 소견: 1947년 6월 17일 개교가 맞고 소재도 지금의 주왕산면(옛 부동면)이다.
- [✅ 확인] 1948.12 안덕면에 중학교 개교
- 교정: 개교 당시 교명과 학급·학생 수를 밝혔다.
- 소견: 1948년 12월 10일 안덕공립공업초급중학교 개교로 확인된다. 동명 학교가 있으나 소재가 안덕면으로 특정돼 오귀속이 아니다.
- [🟡 부분오류] 1953.6 진보면에 고등학교(진보고등학교, 진보중학교 병설) 개교
- 교정: 개교 당시 교명을 진보농업고등학교로 바로잡고, '진보중학교 병설'을 뺐다. 교명이 진보고등학교가 된 해(2005)를 덧붙였다.
- 소견: 개교일은 맞지만 교명이 뒤의 이름으로 소급돼 있었고, 병설 서술은 학교 연혁 어디에도 근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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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천사는 민성현 박사가 설계한 파이프라인에서 지역뉴스를 수집·합성하고, 각 핵심 사건의 지역 귀속을 적대적으로 검증해 작성했습니다. 작성·검증 방식(AI 동료 소개) →